가을로 접어 들었습니다. 날씨도 두통을 앓는가, 서툰 빗자루질 하듯 나라를 온통 휩쓸고 지나간 태풍 프라피룬 탓에 가을걷이를 앞둔 마음이 그리 가뿐하지 않습니다. 한참 익어 가던 벼가 쓰러져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싹이 나기도 합니다. 키가 크고 대가 약한 일반벼(수원벼,진부벼 등)가 많이 쓰러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쓰러짐에 강한 오대벼는 피해가 덜하지만,올해는 도열병과 쭉정이가 많 이 생겼습니다. 그렇더라도,벼 베는 논두렁에서 들이키는 막걸리는 시원하고 단 맛으로 올 농사를 마무리하는 감회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제,벼베기가 모두 끝나기 까지 비는 오지 말아야 겠습니다. 지난번 태풍때는 뻔히 예상되는 농작물 피해 때문에 잠을 못자고 뒤척였습니다. 비가오면 울어댈수 밖에 없는 청개구리의 사연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고,그 바램을 외면하고 녹슨 함석지붕을 요란스레 두드리는 폭우에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추수가 끝날때 까지는 도시 사람들도 '가을비 우산속' 낭만에 대한 기대를 미뤄줬으면 합니다. 한낮,커다란 버드나무며 토토리나무에선 남은 삶이 '마지막 잎새' 같은 매미들이 날개가 닳도록 울어대고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땅위의 매미'라 할 귀뚜라미가 그 계절 노래를 이어 받습니다. 천정에 매단 끈끈이에 들깨알 같이 달라붙어 옴짝 못하고 죽은 파리들을 보면서 지난 긴 여름을 돌아보기도 하면서,저걸 미끼로 날피리(피라미) 낚시를 해 봤으면 싶기도 합니다 집집마다 마당에 빨간 고추를 따다 말리고 있습니다. 참깨는 대궁째 베어서 알을 떨어내기 위해 말리고 있고, 감자며 옥수수를 심었던 밭에선 김장 배추와 무우가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고향에선 밭곡식을 예전처럼 많이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먹을 만큼, 도시에 나가 사는 자녀나 친지들에게 나눠 줄 정도만 농사 짓습니다. 고추나 콩,깨 그리고 다른 농수산물을 자급자족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얼마전, 중국에서 수입한 납이 든 꽃게,복어와 유해한 타르색소로 물들인 참깨를 통해서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염된 환경과 물질들이 우리들에게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길 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 몸 속으로 들어오는 독이 든 공기,물,음식과의 만남을 점점 피하기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환경 가치관'을 새롭고도 바르게 세워야 할 때 입니다. 그것은 소비자,도시인 뿐 아니라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농어민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일 입니다. 추석이 가깝습니다.어릴적,추석날의 줄거움과 기다려짐은 지금으로 치면 잘 영글은 벼를 수확하는 날의 그것에 비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석을 쇠러 고향을 찾아오는 길이 혹 힘겹고 어릴적 같은 기쁨이 샘솟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엇이 됐건 기대를 품고 다녀 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연휴가 이래저래 소모적이지 않고,어떤 '샘물'을 길어가는 명절이길 바랍니다.밝은 보름달 휘영청 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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