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부터 이어진 긴 가뭄끝에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여름 장마철이면 불신의 벽이 쌓이곤 하는데, 다름아닌 일기예보 입니다. 올 들어서도 여러번 맞지않는 예보와 당장의 날씨를 두 손바닥 지문을 대조하듯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장날이건만도 기다리던 빗방울이 떨어져, 기대 속에서 하루를 얼쩡거렸습니다. 지금까지 한달 이상, 동네에서는 물 걱정을 하며 지냈습니다. 지난 호에 전해 드렸듯, 5월엔 모가 망가져 <난리>를 겪었는데, 6월 부터는 물이 떨어져 다시 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물 난리로 마을앞 다리가 끊겨 그것을 다시 놓는 공사를 하느라 개울을 깊이 팠습니다. 그 영향이 커 동네에서는 40여가구의 자가 지하수 물이 떨어졌습니다. 볍氏 또한 달포 가량 물을 길어다 쓰고있습니다. 감독관청과 군청에 민원을 넣어 뒤늦게나마 가까스로 답을 얻는 듯 한 상태이기는 하나, 그동안 겪은 불편은 꽤 큽니다. 이즈음 이 골짝 저 들판 논들엔 키와 포기를 불린 벼들이 뙈약볕 사이사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남실거리고 있습니다. 그 위로는 무리지은 마당잠자리들이 바람에 실린 햇볕을 즐기며 날고, 논둑엔 새끼손톱 크기 계란후라이 같은 망초꽃들이 가득 피었습니다. 그동안 벼포기 사이에 숨어 자란 돌피와 삑삑이며 바랭이풀들이 벼 위로 큰 키와 몸집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들은 벌써 고개숙인 이삭을 달고 있습니다. 마치, 뒤늦은 벼들에게 "나 잡아봐라!"고 놀리는 듯 합니다. 그중 골치인 것은 모내기때 모포기와 같이 심긴 <포기피> 입니다. 그것들은 벼 보다 뿌리와 대궁이 훨씬 질겨 마른 문어발 뜯듯 줄기를 한가닥씩 뜯어내야만 합니다. 때늦은 피사리를 하느라 허벅다리께 까지 자란 벼들의 키를 넘어 다니려면, 마치 허들을 넘듯 아니면 발차기를 하듯 발을 앞으로 쭉- 뻗어올려야 합니다. 땅속으로 한껏 자라난 벼뿌리를 밟을라 치면, 입안을 가득 채운 커다란 상추쌈을 깨물듯 우두둑- 우두둑- 뿌리 끊기는 소리가 납니다. 그동안 볏닢을 갉아 먹는 멸강나방 애벌레가 다녀갔고(아직 남아있는 곳도 있습니다), 운장리 지뢰밭 안 커다란 뽕나무는 봇도랑 너머로 내민 가지에 '자식 여럿 길러낸 어머니의 돌기 굵은 젖꼭지'같은 시커먼 오디를 가득 열었더랬 습니다 볍氏는 해마다 그것을 즐깁니다. 조금은 한가한 때이지만, '벼는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그대로 이루기 위해 매일 논에 나갑니다. '유월에도 벼가 시퍼런 집엔 시집도 가지 마라.'는 말이 있답니다.거름기가 지나치면 벼가 되려 죽습니다.거름기가 빠져 벼가 한번 노래질 때입니다.도열병이 많이 돌고 있습니다. 그걸 못잡으면 농부에겐 <가을>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