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에서 하얀 아카시아 꽃이 차츰 말라가고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소르르- 논물 위로 하얀 꽃들이 떨어져 내리곤 합니다.전방 운장리나 버들골 이곳저곳엔 아랫녘 으로부터 벌-아바이(양봉인)들이 아카시아 꿀을 따러 올라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산자락이나 풀이 무성한 둑길에선 줄기를 꺾으면 노란 물을 내보이는 애기똥풀들이 지천으로 피어서는 기다란 씨방을 키우고 있습니다. 보기만해도 시큼한 느낌을 주는 돼지싱아는 몸속 구멍과 허리통을 함께 키우며 뻣뻣한 줄기로 늙어가고 있습니다.지난 5월 내내 고향에서는 못자리로 <난리>를 치렀습니다. 늦도록 계속된 추위와 이상기온으로 집집마다 모가 망가져 못자리를 두 세번씩 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진지 잡수셨어요?"가 아니라, "어떻게 모는 괜챦으세요?"라는 새로운 인삿말이 생겨날 수 있을 지경까지 갔드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내기가 여느해 보다 좀 늦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어려웠던 5월을 지내면서 '농사가 만사다'라는 생각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농사일이 제대로 않돼니 다른 모든 일상사가 흐트러졌습니다. 가족과의 여가시간에서도 그렇고 다른 볼일이나 관심사를 넉넉한 마음으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산자락에선 조팝나무와 샌달나무에 하얗고 노란꽃들이 피었다 졌고, 물 담은 논에선 고추개구리와 엿장수(소금쟁이)들이 짝짓기 날들을 보냈습니다. 풀이 자라난 논둑엔 물뱀들이 나타났고, 밤나무 가지는 눈꼽만한 잎을 싹틔워 내보냈고, 강남으로 부턴 몇 않되나마 제비들이 찾아왔습니다. 볍氏가 아는 바 제비가 찾아든 곳은 동네 심상유님댁과 와수리 그릇가게 <화성상회> 콘크리트처마밑 두 곳입니다. 좀 더 많은 제비들이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어 봅니다. 6월인 지금, 드믈게나마 볼 수 있는 뽕나무들에선 콩알만한 오디가 빨갛게 약이 오르고 있고, 역시 드믈게 볼 수 있는 복숭아와 봉두나무는 구슬만하게 열매를 키우고 있습니다.재래식 변소-뒷간에선 어찌 개미들에 뒤지랴며 구더기들 이 부지런한 소화작용으로 묽게만든 <뭔가>가 튀어오르곤 해 일 보기가 조심스러워 졌습니다.무엇보다 논바닥에선 모살이를 거친 모들이 중거름-가지거름 기운을 받아, 모에서 벼로 퍼렇게 커오르기 시작해 어려웠던 지난 두어달 동안의 시름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봄 부터 가물었습니다. 논농사야 있는대로땅위, 땅속 물을 끌어다 대지만 밭작물은 그렇지 않아 가뭄을 타고 있습니다. 집에서 쓰는 물도 적게 올라오는 집이 늘고 있습니다. 물과 자연,인간환경에 좀 더 신경을 쓰며 지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써래질전 논에 밑거름을 치고, 모내고 사나흘뒤 제초제(마세트같은 돌피 싹트임 억제제)와 살충제(큐레탈같은 벼물바구미, 굴파리 방제제)를 치고, 다시 열흘가량 지난 다음 중거름과 중기제초제를 치고나면 논에 들어가는 일이 뜸해집니다. 예전처럼 논김을 세벌 네벌 매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풀박사>니 <포도대장>이니 <노난매>니 <만냥>이니하는 제초제들이 김매기를 대신합니다. 논둑의 풀들은 비선택성 제초제-식물전멸약 <그라목손>이니 <근사미(根死尾?)>니 하는 것들이 논둑깎기를 대신 합니다. 그렇기에 농사가 가능한 세월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