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볍氏 (moonemi@hanmail.net) ( 남 )
2003/3/12(수)
그리운 아이고야 할머니..  



70년대 초반(?) 즈음부터 90년대 초반까지 20여 년을 무네미에서 사셨던 <아이고야 할머니>입니다.
아이고야 할머니는 <거지>입니다.
말투로 봐서 경상도 분이란 것을 알 뿐, 아이고야 할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언젠가, 아드님이 찾아 와서 모시고 가려 했으나 한사코 이 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고야 할머니는 한 때, 무네미 개구쟁이 아이들로부터 짓궂은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했고, 나무때기로 할머니 치마를 들추거나 보퉁에 무엇이 들었냐며 쿡 쿡 찔러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그런 <행패>는 주로 떠돌이 거지들, 그 중에도 만만한 거지들에게나 행해졌던 것이기에..
무네미에서 터 잡고 사신 아이고야 할머니는 차츰, 아이들의 그런 짓궂음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아이고야 할머니는 주로 동네 빈집이나 무네미 앞산에서 살았습니다.
무네미, 육단리, 와수리를 다니며 먹을 것을 얻어 가고, 가끔은 옥수수나 자잘한 것들을 슬쩍 집어가기도 했지만..
아이고야 할머니는 나름의 자존심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먹을 것은, 꼭 필요한 만큼만 얻으려 했고 곁을 지나는 아이들에게 굽거나 삶은 감자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겨울 날, 따스한 볕이 드는 어느 처마 밑이나 짚 낫가리 한쪽에 앉아 몸의 이를 잡는 아이고야 할머니 모습..
홀쪽한 볼, 입 안에 몇 안되는 이로 오물오물 무언가를 잡숫던 할머니 모습..
새까맣게 그을은 손잡이 없는 찌그러진 냄비와,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보퉁이를 옆에 끼고 머리에 인 아이고야 할머니 모습..
아이들이 못살게 굴면, "아이고야! 와 이르노.. 아이고야!" 울음소리를 내서 별명이 <아이고야>인 할머니..

할머니는 90년대 초반 이후, 어디론가 사라졌답니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숨을 거두었으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고야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 1991년에 할머니 사진을 찍을 때입니다.
20여년을 무네미에서 살았던 아이고야 할머니..
무네미에서 사시다 돌아가신, 동네 어느 분들과 다름없이 아이고야 할머니는 우리들 마음 속 영원한 이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고야 할머니..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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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1.58.140 스마일(현이): 볍씨님? 정말 오래전 기억이 생생하네요..아이고야 할머니...!!!정말 그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03/18-18:08]
210.179.205.194 지점집: 아이고 할머니의 추억은 언제나 그립기 까지 하네요.. 까맣게 그울린 양은그릇에 집을 짓고 있는 모습. [10/07-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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