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볍氏 (moonemi@hanmail.net)
2004/4/7(수) 11:20 (MSIE6.0,Windows98,i-NavFourF) 220.74.10.169 1024x768
발 방앗간..  

"순례.. 이따가 저녁 먹고, 발 방앗간으로 나와.."
"안 돼유.. 오늘은 아부지가 이발사 아저씨 댁에 마실 안 가실 것 같은디.."
"늬 아버지, 아까 보니께 구판장에서 삼봉 아저씨허구 약주 많이 드시는 것 같더라.. 그러니 일찍 주무실꺼 아녀?.."
"그래두, 오늘은 안돼유.. 내일이 보름이라 달이 엄청 훤할 틴디..
지난번에 순이 언니두 신사곡에 사는 춘길인가 하는 사람과
발 방앗간에서 만나다가, 삼봉 아저씨 헌티 들켜 설랑 경을 칠 뻔했다 던디.."
"말했쟎여.. 삼봉 아저씨 오늘 늬 아버지랑 막걸리 많이 드셨다구..
암튼, 이따가 늬 아버지 주무시걸랑.. 발 방앗간으로 꼭 나와야 혀!..
안 나오면, 내는 밤새도록 일랑 기다릴 티니 께.."

"아이구.. 어쩐댜?.. 오늘은 안돼는디.."

순례는 여러 해 동안, 마음 감추며 사귀어 온, 동네 총각 덕칠과
오늘밤, 삼봉 아저씨댁 곁에 섰는 발 방앗간에서, 보름달을 피해 몰래 만나려는가 봅니다.
달 밝은 날, 남의 이목- 눈치 살피랴,
떡 벌어진 덕칠 오빠 가슴에 안기랴, 콩닥!.. 콩닥!.. 순례는 좋겠다.


▲지붕 뜯기운 발 방앗간, 왼편은 조병암님 살던 집, 오른편 파란 지붕은 최삼봉님 사시던 집..

꽤 여러 해, 동네 한켠에 서 있던 발 방앗간이 헐리려는가 봅니다.
엊그제,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저 무심코 교회 앞을 지나다 발 방앗간 쪽을 바라보니..
발 방앗간 슬레이트 지붕이 거의 뜯어져 있습니다.
발 방앗간이 들어앉은 논 주인-돌아가신 동네 장근선 어른의 따님(근남면 육단3리,문수동에 삶) 댁에서..
오랫동안, 자리만 차지했지 사용을 않던 동네 발 방앗간을 이참에 헐어 버리려나 보다.. 했씁니다.

그 댁에 전화를 걸어 여쭤 보니, 아는 이가 슬레이트 지붕이 필요하다 해서 뜯어가라고 하셨답니다.
또한, 발 방앗간 역시 짬이 나는 대로, 늦어도 모내기 전 까지는 헐려고 한답니다.
발 방앗간은 동네 것이니, 안에 있는 디딜방아 공이와 돌 확-절구는 동네에서 떼어다 보관하겠노라 말씀 드렸습니다.


▲장근선 어른의 따님 논 가운데 발 방앗간, 그리고 관정, 오른편 슬레이트 지붕이 장근선 어른 사시던 댁..

예전에, 삼봉 어저씨가 사시던 집 곁에 섰는 발 방앗간..
동네, 어머님들은 그곳에서 떡살을 찧고 가을엔 메주콩도 찧어 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마도, 90년대 초반까지는 발 방앗간이 이용됐을라나? 싶기도 합니다만..

언제부턴가, 발 방앗간은 동네에서 찾는 이 없이 방치되어..
발 방앗간이 들어 섰는 논 주인댁에서, 못자리에 쓰고 난
대나무 활대나 비닐, 바닥 마대 등 잡다한 것을 집어넣는 쓰임새 없는 창고 덜렁 남아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바라 본 발 방앗간, 저만치 오른편 뒤쪽엔 동네 신흥교회..

고향에 아주 돌아오기 전, 일이 있어 무네미에 다니러 오면..
이곳 저곳 동네를 살펴보다, 발 방앗간에 들어가
디딜방아 공이를 밟아, 쿵닥! 쿵닥! 헛 방아를 찧어 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발 방앗간을 소재로 한 습작 소설도 한 편 써 볼까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제목을 <발 방앗간의 사랑>이라던가 해 가지고 말입니다.


▲왼쪽 편에서 바라 본 발 방앗간, 저만치 왼편엔 모기동산..

이제, 며칠 지나잖아..
발 방앗간은, 그 섰던 자리에서 사라지고
우리들 무네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나, 쿵닥! 쿵닥! 추억의 방아를 찧을 것입니다.


▲뒷편에서 바라 본 발 방앗간, 그 뒷편에 보이는 '앞산'..

추운 겨울, 어쩌다 참새들이 깃 들어 하룻밤 쉬어가기도 했을 발 방앗간 처마 밑..
그리고, 누군가는 가공의 인물- 순례와 덕칠이 처럼 보름달 뜬 밤이 아니라도..
사람들 눈을 피해 숨어들어, '몰래한 사랑'을 나누었을는지도 모를 발 방앗간..


▲오른편에서 바라 본 발 방앗간, 벽에 큼지막한 낙서가..

아주 한 때는, 메주콩 찧을 함지가 몇 개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놓여지고..
품앗이하듯 번갈아 가며, 다른 집 메주콩 찧는 디딜방아를 대신 밟아주기도 했을 테고..
그러면서, 아주머니들 이런 저런 사는 얘기 꽃피웠을 발 방앗간..


▲잡다한 것이 들어있는 발 방앗간 안- 절구 공이와 돌 확(절구), 그 두 개는 가져다 보관할 것들..

장대비 쏟아지는 장마철이면, 맹꽁이, 참개구리, 고추개구리 비를 피해 찾아들고..
하다못해, 모기들도 날아 들어와 벽에 붙어 있곤 했을 허름한 발 방앗간..


▲발 방앗간 안 벽에 쓰인 아이들 낙서- 크레용과 백묵으로 쓴 듯..

연세 드신 분들이, '옛 사람' 되어 무네미를 떠나 가셨듯..
세월의 변화를 이기지 못한 발 방앗간도, 우리들 곁을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발 방앗간이 헐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찾아가..
쿵닥! 쿵닥! 디딜방아 공이를 밟았다 놓았다, 헛방아- 빈방아 라도 찧어 봐야지 싶습니다.


▲뒷편 창틀에서 발 방앗간 안을 통해 건너편 창틀로 내다 본 모습, 언뜻 철원읍 노동당사를 떠올리다..



211.194.62.232 지민맘: 아주 적나라한(?)삶을 그리시고 있군요. ^^ 반갑습니다. [02/18-14:16]
211.177.28.145 민계화: 발방앗간 그 옛날,고추 빻았던 그 디딜방아 추억솟 [01/06-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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