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볍氏 (moonemi@hanmail.net)
2003/8/11(월)
오래된 이발관..  


▶오래된 이발관의 세면대, 달력, 거울, 조리..

저희가 어릴 적, 무네미 사람들은 이발을 할라치면 동네 이발소를 이용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은 그랬는데.. 다른 집은 어땠는지.
그러나, 이발을 하러 이발소 아저씨(김재남) 댁에 가보면,
먼저 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다른 집에서도, 무네미 '무허가 이발소'를 많이 이용했던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다, 이발사 아저씨가 머리를 깎을 수 없는 일이 있으면..
와수리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기도 했는데, 그때 찾았던 이발소를 돌이켜 보면..
와수1리 지금의 <풍년상회> 쯤에 있었던 이발소와, 와수2리 <명랑서점> 옆쯤에 있었던 이발소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무네미 이발사 아저씨에게서 아닌 다른 이발소를 찾을적엔, 주로 <칠성이발관>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와수리에 내려가서 머리를 깎는 일은 일 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았던 와수리 이발소에서 기억나는 것은..
이발사 아저씨나, 이발을 돕는 분이 머리를 감겨주는 것입니다.
작은 타일이 다닥다닥 박힌, 세면대 앞 의자에 앉아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있으면..
먼저, 플라스틱 조리로 퍼 낸 물로 머리를 적신 다음, 비누칠을 하고..
손바닥으로 머리를 몇 번 비벼댄 다음, 열 손가락을 직각에 가깝게 세우곤..
머리카락 속을 헤집으며, 머리통 이쪽 저쪽 긁어가면서 비듬이나 때를 벗겨내는데..
저는 그때의 느낌-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 같은 시원함이 좋았습니다.

비누칠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다음엔,
조리 목을 잡고 퍼낸 적당히 미지근한 물로 머리를 헹궈 주시는데, 그때의 느낌 또한 참 시원했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깎은 다음엔,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 주는데..
그 헤어 드라이기 라는 것은, 지금처럼 몸통이 플라스틱제품이 아니라,
스테인레스인 듯한 번쩍 번쩍 빛나는 쇠로 된 것이었고, 더운 바람이 나오는 '주둥이'는
마치 백로의 목처럼 길쭉하니 앞으로 뽑혀 나온 모습이었습니다.
더운 바람을 내 부는 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도, 독특한 회전음을 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런 얘기가 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머리통이 좀 굵어진 중학교 시절엔,
어쩌다 이발소에 면도 해주는 아가씨가 있어, 아가씨의 손길이 머리를 감겨 줄 때..
몸을 앞으로 숙인 여인네의 젖가슴이 머리 한 쪽을 지그시 누르는 감촉에,
까까머리 중학생은 머리를 감기는 동안 정신이 몽롱~ 해지는 적도 있었습니다.

사진은, 김화읍 학사1리에 있는 <문화 이발관>이란 곳입니다.
저도, 몇 년 전쯤에 딱 한 번, 문화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은 적 있습니다.
도시 보다 늦게 찾아 온 IMF여파가 농촌을 배회하기 시작할 때 였는데,
보통 이발비의 반 값 정도인, 3천원에 이발을 해 준다는 광고를 지역 생활정보신문에서 보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문화 이발관 주인 박재천(64세)님은, 그 자리에서 44년째 이발을 해 오셨답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이발관 문화도 많이 바뀌어 왔을 것인데..
문화 이발관은, 몇 몇 예전 이발소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각사각 가위질에, 목을 둘러 맨 보자기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
머리카락 눈에 들까, 샛눈 뜨고 거울 속 바뀌어 가는 자신의 모습 훔쳐보기..
조금은 딱딱한 감촉 느껴지는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왠지 일어나기 싫은, 나른한 잠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을 앉혔을 이발소 의자


▶앞으로도 여러 해, 그 자리에 남아 있기를 - 문화 이발관..



220.72.210.219 이은성: 돈잘벌기를빌어요 [08/26-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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