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볍氏 (moonemi@hanmail.net)
홈페이지:http://www.moonemi.com 2003/9/16(화) |
 고라니 쉼터..  ▶벼 대궁을 차곡차곡 포개어, 고라니가 만들어 놓은 쉼터.. 올 팔월 이후 날씨가 농사에 너무 안 좋습니다. 이틀이 멀다고 비가 내렸고,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이라 해도 햇살 쨍쨍한 날이 며칠 안됐습니다. 진즉 부터, '몇 년도 이후 최악의 작황'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앞으로라도 날이 좋아야 할텐데.. 오늘 또 이렇게, 눅눅하니 흐리고 안개 자욱합니다. 벼가 고개 숙이고, 밭작물이 여물고 딴딴해 가는 이 즈음 야밤이면.. 산에서, 지뢰밭 숲속에 사는 멧돼지며 고라니 등등의 야생동물들이 논, 밭으로 찾아옵니다. 무슨 심술인지, 멧돼지는 괜한 논둑을 짓뭉개고 옥수수, 고구마 밭을 들 쑤셔 놓습니다. 사슴 닮은 고라니는 논 가운데로 들어가, 사진과 같이 쉼터를 만들어 놓곤 합니다. 밤에 논을 찾아 내려온 고라니가, 멍석이랄까 방석 같은 쉼터를 만드는 자리는.. 비료가 몰려 벼 키가 웃자라거나, 도열병 등으로 벼 대궁이 약한 자리를 고르는 것 같습니다. 저렇듯 벼를 쓰러뜨려 멍석 만들 듯 접어놓으면 수확을 할 수 없습니다. 콤바인 작업도 안되기에, 낫으로 베어 내 버려야 합니다. 저렇게 '본부'-쉼터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찾아와 쉬곤 하던 고라니들은.. 벼 베는 날, 콤바인이 논의 벼를 점점 베어 들어가면.. 이쪽 저쪽 벼 포기 사이를 숨어 다니다가, 밖으로 뛰쳐나오곤 합니다. 그러면, "저 놈 잡아라!!" 논 주인과 일꾼들이 소리치며 좇아갑니다. 어쩌다, 운 없는 고라니는 농군의 손에 잡혀, 가죽과 고기를 내놓고 세상을 뜹니다. 달밤, 산을 내려온 고라니는.. 논 가운데 만들어 놓은 쉼터에서 무슨 생각을 하다 돌아갈까? 암수가 진한 사랑을 나눈 뒤, 노곤해진 몸을 쉬었다 가는 걸까? 그러잖아도 올해, 이래저래 벼가 죽어서 마음 어지러운데.. 고라니, 너희들마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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