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볍氏 (moonemi@hanmail.net) ( 남 )
2003/5/21(수) 06:18 (MSIE6.0,Windows98,i-Nav3.0.1.0F) 61.74.10.165 1024x768
누깔 배미와 키 작은 허수아비..  

지난 8일 시작한 모내기를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논 뿐 아니라, 이앙기를 끌고 동네 몇 몇 댁 모내기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문적인 <영업-농기계일 품팔이>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사흘쯤 더 다니고 일을 마친다고 해야, 열 이틀 동안 여섯 농가 3만5천평 모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제는, 이태희 어른댁 밀계 논 2천평에 모를 심었습니다.
다랑이(썩 좁고 작은 논배미) 아홉 배미입니다.
다랑이 치곤 제법 큰(?) 5백 여 평 되는 배미도 있습니다만, 모내기를 마친 오후 7시께 찍은 위 <기념 사진>에서 보듯 이앙기 바로 뒤에 있는 논배미는,
이태희 어른의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누깔(눈깔=눈알) 배미라 하여, 모를 내는데 고작 모판 넉 장이 들어갔는데, 열 평 남짓 될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이앙기를 몰고 첫 배미에 들어가 모를 내기 시작하여, 고작 1미터쯤 가서 이앙기는 수렁에 빠졌습니다.
작년에도 이태희 어른댁 논에서 이앙기를 빠뜨린 경험이 있고 해서,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했습니다만..
커다란 둑 밑, 쳐지는 물에 의해 수렁진 곳에 미끄러져 드니 벗어날 수가 없더군요.
두어 번 가속페달을 밟으며 용을 써 보다가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이기에, 하는 수 없이 동네 형님의 칠십 몇 마력 트랙터로 끄집어냈습니다.
전 날의 과음으로 몸이 불편한데다, 이앙기 배기가스는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들지, 모도 내지 못하고 첫 걸음에 수렁에 빠지지..
그러고 나니, 비록 잠깐이나마 마음속에선 모를 내고싶은 마음이 달아나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내가 못하겠다고 하면 누가 와서 이 댁 모를 내 드리랴.. 하는 돌이킴으로 뉘우쳤습니다.



점심과 새참을 차려 주시러 나오신 이태희 어른 마나님께선, 남정네들이 모내기를 하는 동안 줄곳 논 옆 콩밭의 김을 매셨습니다.
마나님이 김을 매시는 콩밭에, 까치나 산비둘기가 내려앉는 걸 쫓기 위해 세워 놓으신 키 작은 허수아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것저것 옷가지를 여러 벌 입고, 모자까지 깊숙이 눌러 쓴 콩밭 허수아비..
그러잖아도 허리가 굽은 마나님께선 다리가 아프신지 무릎은 구부리지 않고 허리만 굽힌 채 호미로 긁적긁적 김을 매셨습니다.
허수아비에게도 마음이 있다면, 지금 자기 앞에서 굽은 허리로 김을 매시는 마나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김을 매시는 마나님은 허수아비 앞을 지나치며, '앞으로도 새들이 날아들지 못하게 잘 지켜다오..' 하셨을라나?



다랑이 논과 키 작은 허수아비는 오뉘처럼 곁에 하며, 어린 모와 콩을 보듬어 키워 낼 것입니다.
동네, 신흥교회 조용태 전도사(맨 위 사진 오른편)님은 하루 종일 이태희 어른댁을 위해 모쟁이를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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