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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맞춰 모내기를 하고 있는 다른 농가- 운장리 지뢰밭 앞 논의 모내기를 하는 6촌 호엽 형님네.. 올해는, ‘모 키를 좀 길러서 내야지..’ 하고 생각해 모내기를 늦춘데 따른 어려움이 좀 있었다. 지난해 경작면적의 두 배 가까운 농사(1만6천여평)를 짓게 되었건만 모내기 일정을 예년보다도 늦춘 것이 탈이라면 탈이었다. 웬만한(?) 농가에서라면 모내기를 끝냈을 수도 있을 즈음인 5월 19일에 첫 모내기를 했으니, 일주일쯤 늦었다 볼 수 있겠다. 평균 경작면적 보다 좀 많이 짓는다 싶은 농가들이 못자리, 모내기를 서두르는 이유를 톡톡히 실감한 셈이다. 하긴, 다른 농가 보다 상대적으로 늦었을 뿐 내가 모내기를 한 시기가 벼의 생육 시기에 절대적으로 늦다고는 생각지 안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괜히 그랬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모내기를 늦춰 결과적으로 나중엔 조바심마저 갖게 됐다면 돌아볼 일이다. 매일 모내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5월 19일에 운장리논 첫 모내기를 시작해 6월1일에 ‘뚜껑’을 닫기까지.. 불편한 몸으로 모쟁이를 해 준 또래친구 태복이의 도움이 컸던 반면, 함께 농사짓는 가족의 일손이 아쉽기도 했거니와.. 아니면, 삯품을 사더라도 하루 모내는 면적을 늘릴 수 있도록 일의 진척을 빠르게 했어야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흙이 일찍 가라앉는 운장리 논 3천평을 제외하곤, 나의 승용이앙기를 갖고서도 하루에 2천평 모내기도 바빴다. 모내는 기간동안 모내기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다른 논 모낼 준비하기, 먼저 모낸 논에 약치기 등등의 앞뒷일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를 내는 시점에서의 육묘상태는, 키다리병과 잘록병에 걸린 찰벼 120장을 제외하곤, 오대벼 2천여장과 흑미 80여장의 모가 대체적으로 괜찮은 편이었다. 고개너머 큰골 논에 찰벼를 두 배미 심고 흑미 한 배미 심으려던 계획을 바꿔, 찰벼 한 배미(3백여평), 흑미를 두 배미(5백여평) 심었다. 모내기를 늦춘 까닦으로 괜한(?) 어려움을 겪는 듯도 했지만, 늘어난 면적의 농사를 짓게 되면서, 예년보다 조금은 부지런해지는 듯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다. 올해 모내기 준비를 하면서부터, 주로 식당 밥을 사먹었는데 지금껏 집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못하고 있다. 오늘부터라도, 내가 농사지은 쌀을 씻어 밥솥에 물 붓고 없는 반찬으로라도 집엣 밥을 먹어야 할 텐데.. 싶다. ![]() ▲긴 배미, 운장리 지뢰밭 앞 논에 자박 자박 어린모를 꽂으며 나가는 이앙기.. ![]() ▲함께 모쟁이를 하시는 호엽형의 어머님과 일을 거들어 주시는 동네 마나님 ‘인숙 엄니’.. ![]() ▲운장리논 3천평을 제외하곤, 모든 논의 쎄레, 번지질은 사촌 아우 수일에게 맡김- 올해 처음 농사짓는 신사곡 논을 삶으며.. ![]() ▲남들 보다 늦은 5월19일 첫 모내기를 앞두고, 논을 삶아 놓은 운장리 지뢰밭 앞 논에 모를 떠다 놓고.. ![]() ▲찰벼 못자리를 정리하며-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아 흙이 잔뜩 붙은 모판을 쇠스랑으로 들어보는 태복.. ![]() ▲모내기를 모두 마치고 못자리 하우스에서 쉬고 있는 나의 ‘애마’ 이앙기 그리고 모쟁이를 해준 또래 친구 태복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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