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볍氏 (moonemi@hanmail.net)
2004/6/19(토) 10:39 (MSIE6.0,Windows98) 211.218.58.50 1024x768
비료포대, 다시 허리에 차며- 피사리..  


▲7년째인 군용 탄띠에 매단 피사리용 비료포대를 다시 차고, 돌피 완전 ‘섬멸’에의 의지를 다지며..

고향에 돌아와, 올해로 농사 짓기 시작 한 지 7년째..
그 동안, 제가 ‘7전 7패’를 한 논이 있습니다.
밀계 못자리 배미에서의 <피사리>입니다.

어쩐 일인지, 그 논배미에서는 돌피를 ‘진압’할 수 없군요.
(사실은, 다른 논들에서도 그렇긴 합니다만. 밀계 못자리 배미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돌피가 번성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돌피 씨앗이 눈을 틔우기 때문입니다.

<관행 농법>에서,
돌피가 싹트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른바 1차 제초제(마세트) 인데..
그 효력이 충분히(?) ‘발휘’ 될 수 있도록, 논물 관리 등등을 적절히 하지 못했을 때..
온산에 산 벚나무 활짝 꽃피우듯, 논바닥에 돌피가 돋아나게 됩니다.

그런 탓에, 이 즈음 저는..
남들에겐 일거리도 되지 않을 피사리를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넉 줄, 석 줄도 아니고, 발을 들여놓은 두 줄..
딱 두 줄을 차고 나가며-맡아 나가며 피를 뽑는데, 40여분이 걸립니다.
그 사이, 허리에 찬 비료포대에는 뽑아 담은 돌피가 묵직하게 가득 찹니다.


▲피사리를 해서 말끔해진 고랑(왼편)과, 부지런해 뽑아야 할 피들로 가득찬 고량(오른편)..

밀계 못자리 배미에 들어 설 때마다..
‘이걸 다 뽑아 낼 수 있을까? 못 뽑으면 어쩐다?..’ 하는 암담함과 망설임이 듭니다.
‘그래도 뿌리가 이렇게 약할 때, 부지런히 뽑아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저 만치 앞을 내다보거나, 뽑아 나 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다보거나, 돌아다보면 다시 저절로 한숨이 나오거든요)
그저, 바로 눈앞에 닥지닥지 돋은 돌피만을 바라보며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손놀림을 빨리 하려 애쓰곤 합니다.

그래도 이 즈음, 위안이 되는 것은..
논에, 올챙이 떼가 와글와글 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고추개구리(무당개구리)의 후손-올챙이들이지만..
논바닥과 어린 모를 ‘관리’하느라, 제초제와 살충제를 치다 보니..
쓸쓸한 풍경이었던 논안에, 생명들이 커가고 있다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얼마 있으면,
중간 물 떼기- 벼 뿌리와 대궁을 튼튼히 하기 위해 한 동안 논물을 떼는 것 하기 전에..
논안에 물이 없어도, 도랑 찾아 논둑위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얼른, 다리를 달고, 꼬리 떼고 자라거라..
물 속에 와글와글 대는 올챙이들 보며, 그런 마음입니다.

모내기 끝나고 차츰, 흙물 벗어졌던 손에..
피사리를 하며, 다시 지문指紋 사이에 흙물이 배고..
어설픈 저의 손은, 다시..
좀 더, 농부다운 이력履歷을 쌓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가 많은 논에서의 ‘피사리 자세’- 왼 팔꿈치를 왼 무릎 받쳐 힘을 덜고 오른 손으로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재작년, 피사리하던 손 모습 보기☞

218.237.200.53 박근실: 옛날에는 피사리 제대로 못하면 남의 논을 부치지도 못하고, 동네 어른들께 꾸중듣기도 했었지요....이유는 나중에 피의 씨가 떨어져 그 논은 물론 논물을 따라 이동하여 주변의 논에도 이듬해에 피가 나기 때문이지요. 못자리와 논의 피사리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도 피는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지요. [06/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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